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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빈첸시안의 유산] 제1과 프레드릭 오자남

페이지 정보

본문

학습목표

 

이 과목을 학습한 후에 여러분은;

        (1)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의 영성적 전통에 대해서 이해하고

        (2) 다섯 가지 ‘오자남의 원칙’을 바르게 인식하고

        (3) 오늘날 우리 빈첸시안 전통이 어떻게 살아있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시작기도: 함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 나는 죽음을 겪으시는 그분을 닮아, 그분과 그분 부활의 힘을 알고 그분 고난에 동참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얻은 것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3:9-12)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소개:

각 단원을 돌아가면서 천천히 묵상하듯이 소리 내어 읽습니다.

 

프레드릭 오자남의 생각, 지혜, 그리고 업적을 통해 우리에게 상속된 그의 유산은 매우 풍요로워서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프레드릭은 온전히 인간다운 삶을 살았으며 그의 삶은 그가 기도와 성경 말씀 묵상에 기초한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 점차 체득하게 된 거룩함에 의해 변모되었습니다. 프레드릭은 남편이자 아버지였고, 정의와 진리의 승리자였으며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자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창설자입니다.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의 영성의 핵심적 진리는 그의 존재의 초석이자 근간인, 즉 그의 영적 DNA인 다섯 가지 원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원칙들은 단순히 그의 머릿속에 있는 안전한 곳에 저장된 지적 원칙들이 아니라 그가 살아가고 행동하고 존재의 의미를 둔 진리입니다. 이 ‘오자남 원칙들’은 그의 거룩함, 신앙, 섭리, 하느님의 뜻, 진리, 동정심과 예수님에게로 가는 길에 있어서 디딤돌이었습니다.

 

독서:

 

1) 신앙

신앙은 신성한 불이며, 프레드릭 오자남의 삶을 지배하는 존재였습니다. 프레드릭은 “신앙은 미덕의 행위이며 그러므로 의지의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하느님께 내맡겨야 하며 그렇게 할 때 하느님께서는 빛의 충만함을 우리에게 주신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프레드릭 오자남은 젊은 시절에 신앙의 시련을 겪었고,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싸움이 일어나자 그는 성 보나벤뚜라 성당에 들어가서 어두운 구석에 서서 성체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그의 의심을 거두어 주시고 그의 어둠을 몰아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그의 삶을 진리를 위한 봉사에 헌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프레드릭은 그의 영혼을 하느님께 내맡겼습니다. 의심은 그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 섭리와 하느님의 뜻

섭리는 성 빈첸시오의 삶에 있어서 그러하였듯이 프레드릭 오자남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프레드릭은 그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를 위한 하느님 계획의 일부이며 그의 삶에서 작용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신앙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프레드릭도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항상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하시는 바로 그 순간에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고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분별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는 끊임없는 기도하였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순간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원하시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바로 당신께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3)진리

신앙이 프레드릭의 성화된 불이었다면, 진리는 그의 성화된 열정이었습니다. 이 열정은 그의 가톨릭 신앙에 대한 충실함, 가르치고 글을 쓰는 직업적인 삶,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도직 안에서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진리는 그의 소명이었으며, 그의 삶에서의 사명이었습니다. 프레드릭은 진리가 생명을 얻고 증거되면 그것은 사랑의 모습을 띠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에 머무는 진리는 하나의 생각이지만, 가슴 안에 머무는 진리는 사랑입니다.

 

4)동정심

실천하는 동정심은 프레드릭 오자남 영성의 핵심입니다. 동정심은 실천하는 신앙입니다. 프레드릭은 동정심이 단순히 감정이나 느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프고 가난하며 도움이 필요한 불행한 이웃들을 위해 이러한 감정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해하였고 삶으로 살았습니다.  동정심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느끼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느끼는 어떤 것’입니다.

 

5)예수님

프레드릭은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오 복음서 25:40) 프레드릭은 가난한 이들을 하느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다리이자 중개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 묵상 하시고 마음에 와 닿은 단어/문구에 밑줄을 긋고 빈 공간을 이용해서 필기하십시오.

 

나눔:

‘오자남 원칙들’ 중 어떤 것이 당신의 삶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습니까?

 

마침 기도(다함께)

오 하느님, 당신은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을 세우시어 그를 당신 사랑의 영으로 타오르게 하시고 평신도 단체들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셨나이다. 그의 모범을 따라 저희도 당신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의 누룩이 되게 하소서. 아멘

 

심화 독서:

(다음 과를 시작하기 전에 읽으십시오.)

 

‘오자남의 원칙’ 빈첸시오 전교회 로날드 람슨신부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생일이 된 1853년 4월 23일 40번째 생일에 유서를 썼습니다. 사실 그것은 그의 지성과 심장이 일치된 그의 삶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유서 안에서 프레드릭의 믿음과 원칙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프레드릭 오자남의 삶을 규율하고 인도한 ‘오자남의 원칙’은 신앙, 섭리, 진리, 동정심과 예수님이었습니다.

 

1) 신앙 : 프레드릭의 삶을 지배하는 영향력과 성화된 불

프레드릭은 그의 신앙의 위기로 시련을 겪은 후 몇 년이 지나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그 후로 나는 더 강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은총에 의해 깊이 감화되었다. 나는 하느님께 나의 삶과 힘을 나의 내면에 평화를 되찾아준 그 진리를 위해 바치겠다고 서약했다.” 한 친구는 프레드릭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그는 성화된 불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 사람 안에는 내면적 확신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으며,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설득시킵니다.”

 

신앙은 미덕일 뿐만 아니고 그의 성화된 불 뿐만이 아니며 또한 단순히 그의 삶을 지배하는 영향력만이 아니었고 바로 성화된 교리이자 성화된 진리였습니다. 프레드릭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나는 생에 집착하는 것보다도 더 가톨릭 정통주의에 집착합니다. 나의 마음을 다하여 로마 가톨릭 교회를 사랑하고 거기에 봉사하면서 말입니다.” 그의 말년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랑하는 빈첸시오회는 나의 가족이기도 합니다. 이는 내가 선하고 경건한 부모를 떠난 후 하느님 다음으로 나를 믿음 안에 머물게 해준 존재입니다. 나는 빈첸시오회를 사랑하고 그러므로 내 마음을 다해 거기에 매달립니다.” (1853년 7월 9일자 서한)

 

2) 섭리 : 신뢰 안에서 프레드릭은 늘 하느님의 뜻을 분별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신실하게 행동하는 것은 섭리에 대한 순종을 요구합니다. 프레드릭은 언제 어디서나 늘 성실하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하느님의 섭리에 복종 함으로서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프레드릭은 다음과 같이 기록 함으로서 이러한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현세를 거룩한 섭리가 일하시는 장소로서 존중해야 하며 우리의 일을 우리에게 부여된 임무로 존중해야 합니다.” (1850년 7월 21일자 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평신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삶의 다양한 상황에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아는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바로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께서 하인들에게 하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평신도 그리스도인#58) 프레드릭은 하느님과 교회의 말씀에 대한 수용적인 경청, 열정적이고 지속적인 기도, 지혜로운 영적 지도에의 의탁, 신실한 분별을 통해 그의 삶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거룩한 섭리를 신뢰하면서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시키신 대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진리 : 프레드릭의 삶의 소명과 사명

그의 제자들에게 프레드릭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신학자가 되는 영예는 얻지 못했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행복을 얻었습니다. 믿을 수 있는 행복과 진리를 위해 나의 모든 정신과 마음과 힘을 헌신하는 야망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아멜리에게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진리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나 나는 진리를 필요로 하오. 신앙의 근원은 내 심장 깊숙한 곳에 뿌리 박혀 있소. 내가 그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겸손한 방법으로 나는 가치 있게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일할 것이오.” (1843년 10월 13일자 서한)

 

4) 동정심 : 프레드릭은 동정심이야말로 실천하는 믿음이라 믿었습니다.

파리 성 요셉 갈멜 성당 납골당에 있는 복자 프레드릭의 묘소 뒤 벽에는 착한 사마리아인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그림은 그의 일생 원칙들 중 하나이자 그의 영성의 핵심인 실천하는 동정을 잘 나타내주고 있으므로 그의 묘지에 매우 잘 맞는 그림입니다. 프레드릭은 동정이야말로 실천하는 믿음이며 가슴 안에 있는 진리는 사랑이라고 믿었습니다.

 

프레드릭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이해했고 실천했습니다. 프레드릭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오늘날 인간성은 복음에 나오는 나그네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인간성은 그것이 소유한 믿음과 사랑의 보물을 빼앗아가는 악인들인 살인자들과 강도들에 의해 공격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벌거벗기고 상처 입혀서 길가에 눕혀 놓은 채 버려두고 가버렸다.” 그러므로 프레드릭에게 있어 인간성은 희생자였다. 그렇다면 프레드릭에게 있어 착한 사마리아인은 누구일까?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세속적이고 믿음이 약한 나약한 사마리아인들 입니다. 우리가 용기를 내어 이 거대한 환자에게 다가갑시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상처를 돌보고 기름을 발라주며 위로와 평화의 말을 속삭여 줍시다.”

 

누가 ‘착한 사마리아인들’인가? 바로 우리 빈첸시안들입니다! 그러나 당신도 알 수 있듯이 프레드릭은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아닌 ‘나약한 사마리아인들’로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물질적인 동정의 실천을 통해 상처받고 강도 당한 인간성을 돌보는 나약한 인간들입니다. 결국 우리 자신들이 인간성의 구성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약한 자들이 돌보고 있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빈첸시안들의 동정심에 대한 필수적인 부분은 바로 우리가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돌봄에 있어 우리는 스스로를 판사나 배심원으로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 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루가 6:37-38)이라 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 : 프레드릭은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보았습니다.
 

프레드릭은 특히 가난한 이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빈첸시오 영성의 핵심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목마르고 배고프고 헐벗고 아프거나 감옥에 갇힌 이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프레드릭은 가난한 이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확인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사람의 아들과 가난한 이들을 봅니다. 그들은 거기에 있고 우리는 손을 뻗어 그들의 상처를 만질 수 있고 그들 이마의 가시관에 찔린 상흔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불신은 사라지고 우리는 그들의 발 앞에 꿇어 엎드려 성 토마스 사도와 같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당신들은 우리의 주인들이며 우리는 당신들의 종입니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당신들 안에서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사랑할 수 없고 우리가 직접 눈으로 뵐 수도 없는 성화된 하느님의 형상입니다.”(1836년 11월 13일자 서한) 프레드릭은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뵈었으나 이는 역사 속의 주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레드릭은 그들 안에서 상처받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처를 입고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보았습니다.

 

프레드릭은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해 주는 중개자이자 다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통해 우리의 삶에 오시며 그렇게 우리를 위해 중재해 주십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정의와 자비를 보시고 우리의 봉사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보내신 전령입니다.” 그는 또한 가난한 이들이 우리의 중재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의 이름으로 베풀어서 가난한 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한다면 봉사의 상호성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당신이 도와준 가난이 닥친 가족이, 노인과 선한 어머니와 어린 아이들이, 하느님의 옥좌 앞에 당신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면 당신에게 진 빚보다 더 크게 되갚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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