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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빈첸시안의 소명] 제6과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사명

페이지 정보

본문

학습목표

이 과목을 학습한 후에 여러분은;

(1) 회원선서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하고

(2) 회원선서에 나오는 핵심단어를 더 잘 설명할 수 있고

(3) 회의 사명이 어떻게 회의 미래상에 영감을 주게 되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시작기도: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 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5-17)



소개

각 단원을 돌아가면서 천천히 묵상하듯이 소리 내어 읽는다

회원선서는 단체의 고유한 목적을 기술합니다. 회원들의 가치와 미덕을 강조하여 미래상과 모든 의사결정에 영감을 줍니다.



성 빈첸시오회 아 바오로회의 회원선서:

복음적 가치에 입각하여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창설자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과 수호성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의 전통을 이어받아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개인 대 개인으로 직접 찾아가 섬기며 남녀 회원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인도한다.

복음적 가치:예수 그리스도는 빈첸시오 성인 삶의 원동력이시다. 성인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과 활동 중심이라고 간주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빈첸시안의 원천이시며 모델이시다.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가톨릭 신앙과 원칙에 기초한 가톨릭 평신도 단체이다. 빈첸시안들은 빈첸시오회 사도직을 통하여 그들의 평신도적 소명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다.

영성적 성장:빈첸시안들은 하느님 사랑으로 불타며 거룩함을 향한 여정을 함께 떠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개인 대 개인: 빈첸시안들은 직접 활동에 참가해야 한다.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 이웃들에 대한 우리들의 봉사는 물질적을 것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른 많은 활동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항상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도록 해야 한다.

창설자: 회원들의 영성은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믿음을 새로이 하고자 노력했던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의 영성을 따른다. 창설자의 꿈은 전 세계에 걸친 자선과 정의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었다.

수호성인: 빈첸시오회는 빈첸시오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그 분의 영성을 따르면서 그 분의 모습, 생각, 모범과 활동을 증거한다.



잠시 묵상 후 마음에 와 닿은 단어/문구에 밑줄을 긋고 빈 공간을 이용해서 메모한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회원선서(계속)

빈첸시안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하느님 가족이라는 묵상 안에 빈첸시오 회원들은 민족적, 문화적 배경, 나이, 경제적 수준에 관계없이 모이는 단체이다.

빈첸시안은 풍성한 기도와 묵상으로 새롭게 되며 가난, 겸손, 나눔의 정신으로 서로 돕고 회칙을 준수하는 단일 국제 자선 단체로서 일치를 이룬다.

빈첸시안들은 모든 자선과 정의를 위한 활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의 증거자가 되고,

빈첸시오회는 가난한 이웃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고통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다른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협조하며,

섬기는 이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가족: 빈첸시오회는 하느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 모두는 형제 자매라는 믿음에 근거를 둔다.

가난, 겸손, 나눔, 기도, 묵상, 서로 돕는 모임, 자선과 정의: 이것이 우리 회의 핵심가치이다.

회칙: 회칙은 1835년에 만들어졌으며 초기 빈첸시안들의 경험에 의거한 것이다. 회칙은 회의 목적과 초기 설립 정신을 보존하도록 하는 규정을 제공한다.

빈첸시안은 주님을 뵙는다: 빈첸시안의 소명은 어려운 이웃들을 섬김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의 연민과 사랑의 증거자가 된다. 빈첸시안들은 희망 속에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잠시 묵상 하시고 마음에 와 닿은 단어/문구에 밑줄을 긋고 빈 공간을 이용해서 필기하십시오



나눔:

어떤 단어가 가장 마음에 와 닿습니까?



마침기도: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의 말씀을 마침기도로 바칩시다

”우리는 하느님께 합당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대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가난한 이웃들에게 갑시다!” 아멘 1833년 4월 23일



심화독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Ronald Ramson 전교회 신부님의 저서 ‘프레드릭 오자남과 기도하기’에서 발췌

1831년 당시 18세였던 오자남은 더럽고, 음울하고, 사람들로 넘쳐나는 파리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프레드릭은 법과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오자남의 아버지는 아들이 장래 황실법관의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셨습니다. 프레드릭은 법을 좋아하지 않았고 문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꿈은 나중에 이루게 되었습니다.

소르본느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프레드릭은 적과 아군을 동시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 가톨릭의 밝은 면을 알게 되었지만 동시에 강의실과 대학 복도에서는 반가톨릭주의와 반교권주의의 공격을 듣고 느꼈습니다. 교회와 가톨릭 신앙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학생들을 놀리고 비웃는 교수들이 있었습니다. 머지 않아, 프레드릭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믿음이 깊은 학생들과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뭉친 힘과 용기로 신앙의 진실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반격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사연구회

프레드릭은 가톨릭 트리뷴지 편집장이었던 임마누엘 베일리와 함께 역사연구회를 결성하며 같이 일하였으며 매주 토요일에 만났습니다. 1833년 봄 회의 중에 성 시몬주의 옹호자로부터 프레드릭과 다른 동료들이 도전을 받았는데 성 시몬주의자들은 원리 및 강령은 중요하지 않고 사회 경제적인 힘으로 사회가 움직인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어느 토요일 한참 열띤 논쟁 끝에 Jean Broe라는 학생이자 성 시몬주의 동조자가 오자님과 그의 친구들을 다음과 같은 말로써 비난하였습니다.: “우리는 한때 교회가 위대하였고 선의 원천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들의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가난한 이들을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합니까? 여러분들의 활동을 알려주면 우리도 당신들을 믿을 것입니다.“ 성 시몬은 좀 더 평등하고 사회질서를 바로 세우라고 기독교를 비판하였습니다.

프레드릭은 마음속으로 그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레드릭은 역사연구회 회원들을 위해 사회적으로 학문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선활동이다. 가난한 이들의 축복은 하느님의 축복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프레드릭과 친구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지 알아보기 위해 다음 주에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1833년 4월 23일 프레드릭의 20번째 생일날 오거스트 타일랑디에르(Augustine Le Tallandier), 프랑소아 랄리에르(Francois Lallier), 펠릭스 클라브(Felix Clave), 쥴 드보(Jules Devaux), 폴 라마슈(Paul Lamache), 프레드릭 오자남(Frederic Ozanam)등 6명의 학생들과 그들의 조언자인 임마뉴엘 베일리(Emmanuel Bailly)가 가톨릭 트리뷴지 사무실에 모였습니다. 오자남은 반대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거기 모인 다른 사람들도 오자남의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합당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복음대로 따라야 합니다. 우리 모두 가난한 이웃들에게로 갑시다!” 이렇게 하여 그날 밤 자선을 실천하는 빈첸시오회가 탄생하였습니다. 프레드릭 오자남은 회의 주요 설립자이자 영감을 일으켰고, 회의 정신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학생들은 결혼한 성인인 베일리를 회장으로 추대하였으며 그는 11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역사연구회와 비슷하게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자선 협의회라고 이름을 정했으며 역사연구회는 사회적 학문적 단체이고 자선협의회는 봉사단체였습니다. 얼마 후에 그들은 회의 이름을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라고 변경하였습니다. 협의회 명칭은 보통 본당의 개별 단체를 언급하는 것으로서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설립 당시의 빈첸시안들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로잘리 랑뒤 수녀님에게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 도움과 조언을 구하였습니다. 로잘리 수녀님은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며 부드러움과 친절함을 가지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초기 회원들이 가난한 이웃들에게 배급표를 바르게 나누어 주도록 수녀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장

놀랄 만큼 빈첸시오회는 퍼져 나갔습니다. 5년간 프랑스 전역에 15개 센터에서 2,000여명 이상의 회원으로 늘어갔습니다. 빈첸시오회는 회원들 안에 있던 불씨를 살렸습니다. 회원들은 자신들의 개별 단체를 협의회라고 하고 자신들은 빈첸시안이라고 하였습니다. 초기부터 빈첸시안들의 주요한 임무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집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2명씩 짝을 지어 임무를 완수하도록 보내셨던 예수님의 권고대로 가난한 이들을 방문할 때 2명의 회원이 짝을 지어 나갔습니다.

빈첸시오회는 모든 형태의 자선활동을 하였습니다. 음식, 주거, 의복, 땔감 등의 물질적 지원이 필요한 곳을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군인들을 위한 도서관을 세우고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유혈충돌이 일어났을 때, 빈첸시안들은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모든 활동을 통해 회원들은 다른 사람들의 영적 도덕적 복지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프레드릭은 살아있는 동안에 이탈리아, 벨기에,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영국, 독일, 미국, 네덜란드, 그리스, 터어키, 예루살렘, 스위스, 오스트리아, 멕시코, 캐나다에서 빈첸시오회가 설립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진정으로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은 “우리의 작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가 하느님의 섭리라고 간주될 만큼 충분히 대규모로 성장하였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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