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자리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Read Level:1
  • Write Level:2
  • Upload Size:1Mb

좋은때다

페이지 정보

본문

                                   좋은때다       

                                                                       송완섭

 

얼마 전에 몇 개의 화분을 선물로 받았다. 좁은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답답함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며 지인이 가져온 것인데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온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중 다육식물인 화분이 누렇게 잎이 변하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한순간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어떻게 손써볼 사이도 없이 우리의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선물 준 이에게도 미안하거니와 무엇보다도 화분에게는 생명을 잃게 했으니 잘 돌보지 못한 나의 죄가 클 터이다. 주인이 변변찮아서인지 남아 있는 다른 화분들도 건강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여 내 속을 태우고 있다.

이 친구들도 우리 집으로 오는 길에 새 주인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많은 이야기를 속삭였을 것이다. 그런데 첫 대면의 순간 이 어찌 황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를 돌봐줄 수 있는 이가 아닌 돌봄을 받고 있는 새 주인이었으니 실망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를 이곳에 놓고 가지 말라고 떼를 쓰며 울부짖었을 것이다.

눈앞의 선반에 나란히 놓이게 된 화분은 매일 앓는 소리와 아파서 몸부림치는 주인을 보면서 또 사랑과 관심의 소외 속에서 희망을 잃고 아파하며 나를 한번만 바라봐주세요 나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애원하며 시들어 갔을 것이다.

이런 아픈 이별을 격은 후 갖은 상념 속에서 인연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6 년 전 성모병원 회복실에서 누워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부신위에 12cm 종양이 생겨 제거 하는 대수술을 받은 후 회복실에 누워있는 나의 육신은 들숨 날숨뿐 어떤 것도 내 통제 하에 있는 것 같지 않았고 기가 다 빠져 파리하게 누워 느린 눈만 끔벅일 수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침상위의 나무토막처럼 무기력하게 누워있으면서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도 점점 불꽃이 사그라지듯 식어가면서 회복 될 수 없다. 라는 확고함만이 나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게 되었고 그것이 나를 더욱 작고 초라하고 또 우울하게 만들었다.

늦은 밤 회복실의 기계음 소리만이 나의 의식을 툭툭 건드리며 숙면을 방해하던 적막한 병실에 여러 사람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오는데 그 속에서 너무 늦은 시간이라 면회를 할 수 없다.” 라는 단호한 거절의 목소리만은 뚜렷이 들렸다. 그러나 포기하고 돌아가지 않았는지 명확하지 않는 얘기소리가 잠심동안 이어지더니 발걸음 소리가 나의 병실로 나의 침상으로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그러나 오랜 투병생활로 찾아와줄 사람이 없기에 또 이렇게 늦은 시간에 달려와 줄 사람이 없기에 나는 그냥 눈을 감은 채 무심히 있었다. 그런데 뚜벅뚜벅 또각또각 하던 발걸음이 내 침상에서 멈추어 서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가 아닌 줄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데 그이의 목소리가 귀에 익고 낯익은 반가운 얼굴의 그분이 아니던가!!! 반가운 마음에 고마운 마음에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흘렀다.

오랫동안 방문해 주시던 빈첸시오회의 황규철요한님, 김성자아녜스님, 조숙형테레사님 부부 등 여러분께서 밤늦은 시간에 찾아 주신 것이다.

그동안 방문 하실 때마다 세상물정 어두운 나에게 좋은 말씀 들려주시고 힘들어 할 때는 큰형님이 되어 위로의 말로 어르고 달래주기도 했으며 또 끝없는 넋두리와 보잘 것 없는 지꺼림에도 경청해 주시는 그 한결같은 성품과 인품에 반해서 이렇게 좋은 분들과 이웃하며 어우렁더우렁 살다가 그 분의 부름을 받아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온다고 해도 한 세상 그렇게 좋은 분들과 흐드러지게 살다 간다면 무엇이 걸릴게 있겠으며 무슨 세상미련이 남겠는가! 라는 생각을 하며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늘 꿈꿔왔었다.

그런데 오늘 이 늦은 시간에 이 못난 사람을 보려고 달려오신 것이다. 기운이 다 빠져 웃을 힘마저 없고 핏기를 잃어 축 늘어져 있는 내 하얀 손을 말없이 다가와 꼬오옥 잡아 주는 따뜻한 손길에서 당장이라도 꺼져 버릴 것만 같았던 생명의 불씨가 되살아나서 따스한 정기가 온몸으로 흐르는 느낌을 받았고 생기가 돌면서 나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던 지체들이 내 의지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회복실에서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사랑이었고 관심이었고 생명이었고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날 밤의 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생명을 놓아 버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아니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도 회복의 시간을 훨씬 늦어졌을 것이고 힘겨워 했을 것이다.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 가슴깊이 새겨놓았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온몸이 끝이 없는 통증으로 고통스럽고 술에 취한 듯 어지러움에 비록 시달리고 있지만, “참 좋은 때다.” 라는 말을 그럴수록 더 되뇌게 된다.

일반 입원실로 올라 온지 며칠 후 옆 침상에 할아버지께서 입원하셨는데, 면회 온 딸에게 90세의 할아버지께서 네가 올해 몇이더냐?” 하니 딸이 “70 이여요!” 답하니 할아버지께서 ~ 좋을 때다라는 말씀 하시는 것을 들으며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었다. 그래 지금 비록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지금이 나에게 가장 좋은 때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모른다면 가장 좋은 때를 놓치는 우를 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아픈 좋은 때를 내 직업이라고 마음먹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도 내 아픔에 충실 하련다. (! 그러면 내 직업에도 꼭 연차가 있었으면 좋겠다! 근로기준법에 준하여...)

우리는 매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 하며 살아간다. 그 만남 속에서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유쾌할 수도 있고 우울해 지기도 하며 실패와 성공을 하기도 한다. 병실에서 할아버지를 만나 나는 또 하나의 큰 깨달음을 얻었고, 화분은 나와의 만남으로 생명을 잃었다. 다른 만남이 있었다면 많은 번식을 하며 완전히 다른 생을 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법동성당의 고마운 형제님들과의 좋은 만남을 통하여 절망에서 희망 보았고 긍정적인 삶으로 살아가게 되었지만 정작 나는 타자에게 그런 인물이 되지는 못했다.

화분속의 한 생명을 보내고 빈첸시오 형제님들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는 속에서 나도 나를 만난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재작년 과지급된 수급비의 환급금이 너무 많아 힘겨워할 때 황규철요한님, 임병언바오로님, 강성자 아녜스님이 바쁜 시간임에도 오셔서 형 뒀다 어디다 쓸려고 그러냐며 저를 나무라시고 담당자를 찾아가 말끔히 해결해 주셨던 일과, 보일러가 터져서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달려오신 일이며, 작년 집안의 큰 우환이 있을 때 오셔서 위로해 주셨던 일, 건강을 염려하시며 침 뜸으로 치료해 주시던 일 등 그 외의 많이 일들이 많지만 지면상 다 적을 수 없음에 죄송스럽다.

월초가 되면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생겼다. 지금도 한분 한분의 모습이 떠오르며 뵙고 싶어 달려가고 싶지만 바쁘신데 방해가 될 것 같아 꾹꾹 눌러 참아야겠다. 항상 내일처럼 달려와 주시는 법동성당 형제, 자매님들께 존경과 감사한 마음 잊지 않을 것이고 지금의 나로서 보답할 것이 기도밖에 없음에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좋은 인연을 만들어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우리형제 자매님들의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 오늘도 두 손을 모은다. ~~~사랑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유게시판

Total 12건1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게시자 날짜 조회 추천
12 가난한 사람이 요청하는 도움을 거절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 no_profile Joseph5114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5 45 0
11 빈첸시안 영성가족위원회 Systemic Change 강연회 자료의 건 no_profile pacamo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29 34 0
10 답변글 Re: 빈첸시안 영성가족위원회 Systemic Change 강연회 자료의… no_profile saint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2 34 0
열람중 좋은때다 no_profile 요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18 27 1
8 찬미 예수님~ ■ 장지에 잘 모실 수 있게 기도 부탁드립니다 내동크… no_profile Joseph5114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10 36 0
7 찬미예수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한국이사회에서 주최하고 대전교구에… no_profile Joseph5114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6 43 0
6 2018. 9. 1. 김하종 빈첸시오 신부님께서 운영하는 성남 노숙인무료… no_profile Joseph5114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18 53 0
5 요한입니다 댓글 1 no_profile 요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8 70 0
4 가입인사 댓글 1 no_profile 다사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5 58 0
3 모바일에서 사진 올리기 no_profile tram03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18 89 0
2 링크 댓글 1 no_profile 사무장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6-01 154 0
1 총 이사회 싸이트 주소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5-28 100 0
게시물 검색